역시나 번역투에 관해 딴지걸고 싶으신 분은 살포시 떠나주삼!
번역이 아니고 단순 해석임을 염두에 두시길 바람.



모라토리엄을 허용하지 않는 시대
* 모라토리엄(Moratorium): 육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었으나, 아직 사회적 의무나 책임이 지워지지 않은 유예기간. 또는 거기에 머물고 있고자 하는 심리 상태

다카라즈카 초기의 남역스타로서, 전쟁 전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것은 사요 후쿠코(小夜福子), 아시하라 쿠니코(葦原邦子)로, 그녀들에 의해 인기의 주류가 아가씨역(娘役)에서 남역으로 옮겨갔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1933년(쇼와 8년) 전후의 일이다. 1936년에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입시경쟁율이 약 15배로 올랐다. 여성팬의 비율이 급격히 상승해, 관객으로서 즐기고 지지하는 것 뿐 아니라, 스스로 다카라즈카의 무대에 서고 싶다고 바라는 예비군과, 다카라즈카의 무대에 딸이나 지인이나 친구나 제자를 세워 보고 싶다고 하는 주위의 기운이, 높아진 시기다. 학교를 빠지고, 티켓 발매일에 줄을 서거나, 학생의 음악실 입실, 퇴실을 기다리거나 하는 여학생이 문제가 되어, 관극금지를 명하는 고등여학교가 나타난 것도, 이 무렵의 이야기다.

남역스타가 대두된 시기는, 병행하여, 쇼와모더니즘문화를 구가한 소비사회가, 전시총제사회로 회수되어 가는 시대이기도 했다. 1931년에는 만주사변, 32년에는 상해사변과 만주국건국, 5·15사건이 있었고, 가극단이 전쟁 전의 정점을 누린 36년에는 2·26사건이 있었다.

군사체제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라토리엄을 허하는 여지가 없었다. 전시 아래의 국가에 있어서, ‘소녀’기의 존재도 ‘소녀’문화도 쓸모없는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낳아서 늘리세”라는 압력이 강해진다. 국가총동원법의 공포 후, 1940년에는 ‘소녀’에 대한 시대의 압박을 받아, 가극단은 그 정식명칭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에서 ‘소녀’를 빼고 다카라즈카 가극단으로 개칭하게 된다.

이러한 곤란한 시대에, 다카라즈카에는, 남역/아가씨(여)역의 분화와, 남역독자적인 기예의 심화가 진행되어, 팬을, 그 중에서도 여성 팬을 널리 모아 간다.


연기한다는 것의 위상

다카라즈카의 무대에 서는 것이 여자뿐이라는 것, 다카라즈카에는 남역이 있고, 독자적인 양식미와 기술의 축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대를 본 적이 없는 독자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무대를 모르는 사람이나 그 역사적 성립을 모르는 사람의 시선에는, 이성의 의상을 걸치고 이성을 연기한다고 하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다카라즈카의 남역을, 또 남역을 무대의 꽃으로 삼는 다카라즈카를, 기이한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한 시선은, 한편으로는 이 수십년 동안에 형성되어, 지금은 효력이 없어지는 연극관에 묶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일단 틀에 박혀 버린 시선을 해방하는 것은 꽤 어렵다.

하지만, 긴 역사 속에서, 또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넓게 시야에 넣어 극적(劇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자가 여자를 연기하고, 남자가 남자를 연기한다, 는 무대 위의 역할분담은, 그 정도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연기하는 것,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 춤추는 것이 어떠한 위상에 놓여서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여자가 그렇게 하고, 남자가 그렇게 하는 것의 의미가 어떻게 시대와 함께 변화했는가, 동성만으로 무대에 서는 것과 이성이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어떠한 문파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가, 여자가 여자를 연기하고/남자를 연기하는 것, 남자가 남자를 연기하고/여자를 연기하는 것은, 어떻게 분화되어 융합되어 변천해 왔는가--지극히 다원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지역적 문파에 서로 얽힌 속에서, 다카라즈카의 남역은 형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여기서 잠시, 연기하는 여자들과 성차의 불안정함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2007/01/28 04:30 2007/01/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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